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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태양은 강렬하다. 한낮에는 모든 사물을 증발시키고 태워버릴 듯한 기세로 군림하기 때문에 이집트에서는 가장 위대한 신으로 숭배됩니다. 또 그런 이유에서 태양은 종종 왕권에 신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였고 그들의 왕은 태양의 아들로 불러지기도 했습니다. 그 작열하는 태양이 마치 말갈기같이 나일강 줄기를 따라 자라난 울창한 산림과 곡창지대를 건너 서쪽으로 기울 때면 이집트의 심장부를 흐르는 나일강은 홍해바다처럼 붉은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붉은 빛이 시원한 느낌을 줄 때는 오직 해질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태양의 자비는 그때부터 시작되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왕과 노예 모두에게 평등한 안식을 베푸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일손을 놓고 안락한 보금자리로 돌아갈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찰 때, 바로왕은 위대한 왕국의 건설과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 속이 가득해진다.

이집트의 왕궁 오른쪽 베란다에 서면 라암셋이 내려다 보인다. 그곳에는 히브리 노예들이 흐르는 땀으로 번들거리는 상체를 드러내 놓고 라암셋을 건축하고 있는 광경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의 궁에서 지켜보노라면 히브리 노예들은 마치 개미떼처럼 보이는데, 사실 히브리 노예의 목숨은 바로왕 앞에서 한낱 개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의 영광은 그 개미의 역사로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이집트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국가의 중요한 자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는 한때 전쟁을 통해 노예와 재물을 획득하기도 했지만, 노예의 번식과 관리만으로 훨씬 많은 부를 얻을 수 있다는 경제적 원리를 남들보다 빨리 터득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는 노예를 통한 건축과 농경으로 부국을 꾀하였고, 왕과 지배계층은 그들이 소유한 노예들의 불만 수위를 적절히 조절해 주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바로 정치요, 바로왕에게는 가장 큰 문제거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베란다를 거닐던 바로왕이 석양을 뒤로 하고 궁내로 들어서자 백발의 두 노인이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왕국의 역사가 그날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을 감히 상상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바로왕은 신하에게 물어 보았다.

"저들은 누군고?"

신하는 모세와 아론에 대한 정보를 귀엣말로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다 듣고난 바로왕은 말했습니다.

"노예의 후손들이군."

그 말 속에는 그들에 대한 경멸과 멸시가 모두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모세, 드문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이름에 담긴 사연을 바로왕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형이 될 수 있었던 사람, 만일 그러했더라면 능히 이집트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인물, 그러나 동족을 위해 이집트인을 죽인 혐의로 왕자의 영광을 버리고 달아났던, 이젠 보잘 것 없는 남자.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가 광야에서 40년을 살고 노인이 되어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왕은 다시 신하를 불렀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자가 모세인가?"

팔십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얼굴에는 청년과 같은 기상이 엿보였다. 바로왕은 왕좌에 앉아 두 노인이 찾아온 사연을 듣기로 했습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내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오."

바로왕은 소리를 내어 웃었습니다.

"내 백성? 해방? 이유는?"

이번에는 아론이 말했습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셨소. 히브리 백성들을 보내어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시오."

바로왕은 가당치 않다는 듯 조소와 빈정거림으로 일관했습니다.

"히브리 민족에게도 신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군. 그 신은 무슨 신인가? 광야의 신인가?"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야훼께서 내게 나타나 말씀하시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소입니다. 야훼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셨고 오늘날 그의 택하신 백성,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고 했으니 바로왕께선 반드시 이 민족을 해방시키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왕은 호통을 쳤습니다.

"너 모세와 아론은 어찌하여 내 노예들이 일도 못하게 부추기느냐? 썩 물러가서 일이나 하여라. 나의 보살핌으로 인해 히브리인들은 이 땅의 백성들보다도 더 불어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 은혜를 모르고 저들에게 노동을 시키지 말라는 거냐?"

바로왕은 그날로 이스라엘 백성을 관리하는 모든 공사 감독과 현장 감독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는 이제부터 히브리인들이 흙벽돌을 만드는 데 쓸 짚을 대주지 말아라. 저희들이 돌아다니며 짚을 모아 오게 하여라. 그렇다고 생산량을 줄여서도 안됩니다. 지금까지 생산하던 것만큼 만들어내게 하여야 합니다. 저들이 일하기 싫어서 자기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해방시켜 달라고 떠들고 있으니 전보다 일거리를 더 많이 주어라. 눈코 뜰새없이 일을 시켜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일 틈을 주지 말아라."

바로의 계략은 효과를 나타냈다. 히브리 민족은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퍼부었고 그때문에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은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집요하게 바로를 괴롭혔다.

모세와 아론이 다시 바로왕 앞에 섰을 때, 그들은 더욱 당당했고 바로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져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말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모세는 실력행사를 하기 위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를 바로왕 앞에 내던졌다. 그러자 지팡이는 순식간에 꿈틀거리는 뱀으로 변했습니다. 바로는 모세가 마술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정도로 자신을 겁주려 한다는 것을 가소롭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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