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이 수수께끼같은 문제는 삼손이 딤나의 여인과 결혼할 때 블레셋의 동무들 30명에게 낸 것이었습니다. 7일 동안의 잔치에서 블레셋인들은 딤나의 여인을 협박해서 끝내 해답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그 사실을 알고 격노한 삼손은 내기로 걸은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약탈했습니다. 보복은 보복을 낳았고, 장인인 딤나 여인의 부친은 딸을 블레셋 사람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삼손의 처음 결혼은 부모의 반대로 시작해서 블레셋인들의 농간과 훼방으로 결국 파혼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삼손은 운명처럼 또 블레셋 여인 들릴라와 사랑에 빠졌다. 재혼을 한 삼손의 마음 속에는 첫결혼의 실패가 아무런 장애도 교훈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과거나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삼손이었건만, 때때로 예전의 수수께끼가 불길한 징조처럼 떠오르곤 했습니다.
기운이 충만하던 때, 삼손은 수풀 속에서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자의 턱뼈와 송곳니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서 들소의 뼈를 으스러뜨릴 수도 있습니다. 또 앞발의 타격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을 정도다. 거기에 굶주리기까지 한 사자 한 마리가 삼손을 먹이로 보고 공격태세를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사자라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길을 방해하는 괘씸한 사자를 혼내줄 작정이었습니다. 삼손은 민첩한 동작으로 몇 번 위협을 했습니다. 먼저 공격했다가는 당하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사자에 물리면 단 몇 초에 끝장나고 만다. 삼손은 사자를 흥분시켜 먼저 공격해오도록 유도했습니다.
마치 저는 새오 같이 사자가 공중으로 솟구친 순간 삼손은 사자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사자의 몸뚱아리에 자기 몸을 밀착시키고 두 손으로 사자의 주둥이를 쥐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자의 공격용 무기들이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뜻밖의 사태에 당황한 사자는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습니다. 그럴수록 삼손은 사자를 옥죄면서 양손에 더욱 힘을 가했었습니다.
흙먼지가 일었습니다. 사자와 삼손이 어떻게 엉켜 싸우는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며칠 뒤 우연히 그 길을 다시 지나던 삼손은, 자기가 죽인 사자의 주검에서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벌들이 죽은 사자의 몸에 집을 짓고 꿀을 모으고 있었던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니 달콤한 꿀맛이 느껴졌고 삼손은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잡아먹으려 하던 사자의 몸에서 먹는 것이 나오다니, 그것도 가장 무섭고 강한 동물의 몸에서 단 것이 나오다니 재미있군!'
그것은 곧 수수께끼였고, 그 수수께끼는 단지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암시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들릴라와 결혼한 뒤에도 그는 죽은 사자와 꿀벌들의 윙윙거리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힘도 그 사자처럼 한순간에 꺾여버릴 때 가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자신을 당할 자는 없다고 삼손은 확신했습니다.
삼손은 한때 딤나의 여인을 잃었을 때 괴로운 마음에 방황을 일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블레셋 지역에 있는 주막을 자주 드나들며 기생들과 어울렸다.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자주 경계를 드나들며 블레셋인들을 괴롭혀 왔기에, 삼손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영웅이었지만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 사람들이 모인 주막에 들렀다가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삼손이 주막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거나 슬쩍 자리를 옮겨갔다. 그당시 삼손의 괴력은 온 천하에 소문났고, 그 무시무시한 사나이를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던 들릴라만이 삼손의 등장에도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미모로 뭇남성의 가슴을 불태운 여인 들릴라는 두 가지 별명으로 불렸다. 사막의 전갈과 신기루. 그녀의 아름다움 속에는 독소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전갈의 독침과 같다고 하여 사막의 전갈이라고 불렸고, 잡힐 듯 하면서도 끝내 잡히지 않는다 하여 신기루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들릴라는 소문으로 익히 알고 있던 삼손을 만나게 된 것을 내심 기뻐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들릴라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삼손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고, 마치 사자를 상대할 때와 같은 긴장감으로 다짜고짜 그녀를 낚아채려 했습니다. 그러나 들릴라는 노련한 여자였다.
여자를 그렇게 짐승처럼 다루어서는 안된다며 그녀는 삼손의 품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삼손의 구애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들릴라는 삼손이 자신의 테스트를 거친다면 구애를 받아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가축의 힘으로 돌리는 거대한 맷돌을 들릴라 자신의 머리 위에 얹어놓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장사는 그녀를 주막집 마당으로 데리고 나갔고 블레셋 사람들도 뒤따라 나갔다. 그곳에 있는 집채만한 맷돌을 거뜬히 들어올린 삼손이 들릴라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들릴라에게 소리쳤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넘길 테니 받아드시오. 셋을 센 후에 팔을 내리겠소."
마침내 셋까지 가지 않아 들릴라는 삼손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들릴라는 삼손의 용맹성이 자신의 미모와 견줄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가 삼손의 구애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 사랑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내기에 대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미모와 힘의 대결. 과연 어느 쪽이 더 강할까. 그녀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자신의 미를 삼손의 힘과 대결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삼손과 들릴라 둘 중에 누가 이겼는지, 누가 먼저 유혹했는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삼손은 마침내 들릴라와 결혼하게 되어 행복했지만 수수께끼에 대한 의문은 줄곧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혹시 자신이 사자의 신세요 들릴라가 꿀벌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결국 단맛은 블레셋 사람들의 차지가 되고 말 것 아닌가?
그때 이미 들릴라는 은 일천일백에 매수된 상태였다. 가룟유다가 오직 돈 때문에 스승을 팔아 넘긴 것이 아니듯 들릴라가 동족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나르시스의 신화처럼 자신의 미에 도취된 들릴라의 욕망은 삼손을 무너뜨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들릴라가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삼손의 얼굴 위로 눈물을 떨어뜨렸다. 여자는 얼마든지 눈물로 자기 감정을 위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삼손은 모르고 있었던 반면,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는 사실을 들릴라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들릴라는 흐느끼면서 삼손의 힘이 어디서 생겨나는지 그 비밀을 캐고 있었습니다.
"삼손, 당신은 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않은 거죠?"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런데 왜 제게 당신의 그 괴력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 비밀을 말해주지 않는 거죠?
당신은 저를 세 번이나 속였잖아요?"
삼손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쳤습니다. 이 여인이 단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블레셋 사람에게 넘겨주기 위해서일까? 설마 자기 남편인데 넘겨줄 리가 있을까? 그러나 그는 천성적으로 고민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들릴라, 당신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오?"
들릴라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하며,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이 비밀을 당신만 알고 있기로 약속을 해주시오."
들릴라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삼손은 자기의 힘은 사실 머리카락에서 나온다는 비밀을 알려주었고, 이제 더 이상 들릴라가 보채지 않자 개운한 마음으로 단잠에 빠졌다.
들릴라는 비밀을 알아내는 데 세 번이나 실패한 경험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확인해본 뒤에 블레셋 사람들을 불러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자고 있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자른 뒤 그를 괴롭혀 보았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들릴라가 보낸 신호에 숨어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결박했습니다. 밧줄에 묶인 상태에서 잠에서 깬 삼손은 이미 자기 몸에 신의 은총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후회와 비탄에 잠겼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 순간 삼손의 머리 속에 사자의 주검과 꿀벌이 떠올랐다. 결국 그 꿈은 자신의 운명을 예시해 준 것일까?
삼손은 가나에 있는 형무소에서 유형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옥에서 연자맷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 맷돌에 빻아지는 곡식이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양의 곡물을 빻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소가 하는 힘겨운 노동을 이미 괴력을 잃고 평범한 사람과 똑같아진 삼손이 대신한다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론 빻을 곡물이 없는데도 간수들은 삼손을 괴롭히기 위해 맷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힘으로 때워야 하는 일보다도 정말로 삼손을 괴롭히는 일은 간수들의 조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한때 천하장사였던 삼손을 수중에 넣고 맘대로 부릴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간수 한 명이 삼손에게 다가왔다. 그는 삼손의 코에 닭다리를 갖다대더니 냄새를 맡게 했습니다.
"이보게, 삼손. 얼마만에 맡아보는 고기 냄샌가? 목구멍에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군. 이건 자네 거야. 먹어봐."
삼손은 그가 또 어떤 조롱을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입을 꽉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더욱 장난기가 발동한 간수는 삼손을 골탕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뜯어먹던 닭다리를 발로 짓이기더니 삼손의 입에 강제로 넣었습니다. 삼손의 입에 흙과 모래가 잔뜩 들어갔고 화가 난 삼손은 본능적으로 팔에 힘을 넣어 공격하려다가 멈칫했습니다. 간수는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삼손은 잠시 혼자만의 비밀스런 미소를 지었습니다. 사라졌던 힘이 다시 솟아나오는 듯 했기 때문에 그는 하마터면 쇠사슬을 끊을 뻔 하였던 것입니다. 간수는 감방을 나가면서 중요한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모레 다곤 신전에서 큰 제사가 있어. 아마 신전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보다도 네 놈의 비참한 꼴을 보려고 오는 사람이 더 많을 걸."
간수가 나간 뒤 삼손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았다. 옛날 보다야 못하지만 꽤 길어 있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두 눈을 빼앗은 블레셋들에게 보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기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지금껏 잘 수행하지 못했던 사사로서의 사명을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훨씬 더 컸다.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곧 야훼 하나님이었고 그 긴 시간의 통로를 통해 이제 더이상 철없는 청년 삼손이 아니라 민족의 지도자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 있었던 것입니다.
삼손이 다시 과거와 같은 힘이 솟아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중에 감옥 창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수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는데 삼손은 직감적으로 들릴라임을 확신했습니다.
시각을 잃은 대신 그의 청각과 후각은 정상인보다 훨씬 예민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간수가 나가고 들릴라가 삼손에게 다가오는 불과 몇초사이에 삼손의 머리속에는 수많은 영상이 돌아갔고 그 영상은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체포되던 날에 잠시 멈추었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의 이름을 불렀다. 삼손의 머리 속의 영상은 처음 들릴라를 만났던 주막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