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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은 부모의 칭찬을 듬뿍 받아 즐거워하였지만 가인은 은근히 시기가 났다. 그래서 한때는 집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동생과 함께 목축을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인의 가출은 반항과 시기와 모험심의 합작품이었는데,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덴 동산의 입구를 찾는다고 무작정 집을 나간 것입니다.

가인의 시도는 허사였다. 하지만 그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강변을 지나다가 밀밭을 발견한 것입니다. 가인은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몇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수확을 얻게 되었습니다. 수렵에서 목축으로, 채집에서 농경으로, 협업에서 분업으로 생산양식과 구조가 변화되자 잉여물이 생겨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이제는 좀 살만해진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식구들은 각기 자신의 일에만 몰두할 뿐 서로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하와는 그것이 내심 마음에 결렸던 것입니다.

아담도 자식들과 함께 사냥을 다니던 옛날이 새삼 생각나서 하와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하와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정말로 염려되는 게 있어요. 요즘 애들끼리 통 말이 없어요. 세상에 형제라고는 둘밖에 없는데 저렇게 우애가 없으니 어쩌죠?"

"괜한 걱정 말아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아담도 하와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불위에 놓인 냄비에서 보글보글 죽이 끓는 소리가 들릴 즈음 가인이 비를 흠뻑 맞고 들어왔다.

"하마터면 1년 농사를 모두 망칠 뻔했어요. 비가 안와서 걱정이었는데, 이제 비가 너무 올까봐 걱정이에요."

가인은 열심히 농사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부모는 농사일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아담은 가인에게 불을 쬐며 몸을 말리라고 했고, 하와는 따뜻한 죽을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부모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농사에 관심을 좀 가져보세요. 사냥감을 쫓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끼니를 때우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앞으로는 사람들이 농사기술로 먹고 살 때가 올테니 두고보세요."

아담이 죽을 먹고 있는 큰아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그런데 네 동생은 어디 있니?"

그 질문에 가인은 지나칠 정도로 거친 반응을 보였다.

"제가 뭐 동생이나 지키고 있는 사람인가요?"

가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을 조물주인 하나님 앞에서도 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으리라.

"목장으로 갔으니 거기 있겠지요."

그러고는 옷을 갈아입는다는 구실로 제 방으로 가고 말았다. 잠시 후 아벨이 들어왔다.

"형은 돌아왔어요?"

"응, 방금 죽 한 그릇 먹고 제 방으로 갔다. 너도 이것 좀 먹고 한기를 물리쳐라."

아담도 가인에게 했듯 말했습니다.

"여기 불 좀 쬐거라. 양들은 괜찮겠냐?"

"네. 나뭇잎으로 우리를 잘 덮어놓았으니 염려없어요."

그때 가인이 들어왔다.

"밭일은 상관 없으시다더니 양들은 꽤나 염려하시는군요."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얘들아, 저는 너희 둘 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누구든지 자기 나름대로 기술을 가지고 살면 되는 거야. 저는 솔직히 말하면 양치는 일도 농사짓는 일도 관심이 없습니다. 난 옛날처럼 너희들하고 사냥을 나가고 싶다. 어떠냐? 이번 우기가 끝나면 들짐승들이 번성할텐데…."

가인은 농사 일이 바쁘다고 핑계를 댔고, 아벨도 양을 지키지 않으면 맹수의 밥이 되고 말 것이라며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아들로부터 보기 좋게 거절당한 아담이 다시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이번 사냥도 나 혼자 나가지. 하지만 이건 기억해둬라. 앞으로 달이 세 번 차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 중에 최고로 좋은 제물을 준비해 두거라."

언젠가 사냥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던 무렵 뜻밖에도 새끼를 배고 있는 암컷 산양을 신으로부터 선물받은 그들은 하산 후에 한 가지 언약을 세웠다. 아담은 자식들에게 각기 자신의 직업을 갖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 후에는 반드시 1년에 한 번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하나님께 감사의 뜻으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두 아들에게 제사지내는 법을 조목조목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제까지 아버지가 제사하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두 형제는 이제 자신들 스스로 제사를 준비하고 드리게 된 것입니다.

아벨이 아담에게 물었습니다.

"제사 드릴 때 가족이 다 함께 가나요?"

"아니다. 이번에는 각자 따로 가기로 하자. 어차피 너희도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 구실을 해야지."

이번에는 가인이 독백조로 말했습니다.

"잘됐어. 그 편이 훨씬 좋을 것 같아."

가인은 불 속에 마른 나무 한 토막을 넣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동생보다 더 낫다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거야.'

가인은 어서빨리 제삿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우기가 지나가고 농사는 풍작이었습니다.

목축도 잘 되었습니다. 다행이 양들이 지난 우기에 병들지 않아서 양떼의 숫자가 줄기는커녕 날로 번성했습니다. 아담도 제철을 만난 듯 하루에 한 마리 정도는 꼭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잠시나마 집안에는 활기가 넘치는 듯했습니다.

마침내 제삿날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불러 준비물을 점검했습니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자식을 전송하듯이 꼼꼼히 챙긴 뒤에 신신당부했습니다.

"들짐승을 조심하거라. 그리고 제사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입니다.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면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아. 명심하거라. 몸조심하고 잘들 다녀오거라."

아담은 다 큰 아들들을 한 번씩 안아보았다. 그것이 영원한 작별인사가 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하와는 근심어린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두 아들의 뒷모습을 내내 지켜보았다. 하와는 아담에게 당신이 따라가면 좋겠다고 말을 꺼내 보긴 했으나 아담이 그러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식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집을 향해 등을 돌렸다. 그 순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와는 오래전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할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오싹하는 전율이 하와의 몸을 타고 흘러 어디론가 빠져 나갔다. 하지만 에덴 동산에 관한 어떤 언급도 아담에게 꺼낼 수 없었습니다. 아담이 싫어하는 까닭이었습니다.

하와는 아직도 자신에게 남은 형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늘 그녀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하와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두아들이 사라져간 길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자식들은 이미 없었습니다. 하와는 고개를 돌리면서 '괜찮아. 아무일도 없을 거야'하고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그날 이후 하와는 그 순간을 또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바위산에 도착한 가인과 아벨은 각기 다른 봉우리에 올라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아벨의 제물은 1년된 어린 양 한 마리였다. 하지만 가인은 곡식을 바쳐야 했기에 엄청난 분량을 준비해왔다. 제사를 지내려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다 태울 만큼 넉넉하게 땔감을 얹고, 불을 피우고 그리고 제물이 탈 때 연기가 하늘로 잘 올라가도록 신경써야 했습니다. 이 모든 순서가 힘든 일이었고 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형제는 마치 경쟁이라고 하듯이 부친으로부터 배운 방식대로 제사를 진행해 나갔고, 순서가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가인이 먼저 불을 피웠다. 그는 곡식단을 얹어 연기를 냈다. 낱알을 태우기가 힘들기 때문에 곡식단을 통째로 얹어 제물로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 곡식단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가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물렀다. 가인은 저쪽 봉우리를 보았다. 아벨도 이제 막 불을 지펴 장작에 불을 붙기 시작했습니다. 가인은 속으로 뇌까렸다.

'어느 세월에….'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가인의 제물은 예상보다 너무 빨리 타버리고 말았다. 남은 것을 모두 얹어 보았으나 불꽃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장작만 타고 있었습니다. 연기가 하늘까지 시원스럽게 올라가야 하는데 중간에서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가인은 아벨쪽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마치 곧은 강줄기처럼 하늘과 땅사이를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가인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는 자취조차 없고 안색이 온통 잿빛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가인은 뒷정리를 하고 봉우리에서 내려와 아벨을 기다렸다. 가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벨에게 제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들에는 여전히 꽃과 나비가 춤추고 있었습니다. 가인은 문득 아벨만 없어져 준다면 아벨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가인의 시기와 질투는 이미 터져버린 화산 같았다.

가인은 잠시 과거에 아버지를 따라 첫사냥을 나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다리를 저는 노루새끼였다. 아담이 골라준 사냥감이었습니다. 가인은 과연 자신이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짐승에 불과하지만 생명을 끊는 일이 어찌 쉬웠겠는가? 하지만 가인은 아버지 못지 않게 날쌔게 달려가 노루 새끼의 목을 잡아 누르고 손에 들고 있던 날카로운 돌멩이로 두개골 사이를 힘껏 내리쳤습니다. 노루 새끼의 눈동자에 힘이 풀리자 가인은 노루의 목을 누르고 있던 팔에 힘을 뺐다. 첫사냥치고는 훌륭한 솜씨였다. 단번에 죽이는 것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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