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게 뭐야? 그런 걸 창피해서 어떻게 학교에 가지고 가려고 그래?” 윤상이 어머니는 윤상이가 내미는 동물 탈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엄마가 그려줘.
난 못 하겠단 말야.” 윤상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알았어. 물감이랑 종이 가져와.” 윤상이 어머니는 윤상이가 그릴 재료들을 가져오자 자신이 직접 온 정성을 다 기울여 토끼 가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그럼 저는 나가 놀다올게.” “알았어. 빨리 들어와.” 초등학교 1학년 윤상이는 횡 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밖에서 실컷 놀다 돌아오면 어머니가 숙제를 다 해놓을 것을 알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윤상이네 학교에서는 1학년 학생들에게 이야기책 내용에 맞추어 아이들이 탈을 만들어 쓰고 연극을 하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탈을 만드는 숙제를 해야만 했습니다. 윤상이는 그리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만들기가 재미있어서 콧등에 땀이 송송 돋도록 열심히 동물 탈을 만들었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탈을 완성한 자신이 스스로 대견해 탈이 완성되자 곧바로 어머니에게 들고 갔다. 그러나 윤상이 어머니는 아무리 보아도 토끼로 보이지 않는 그 탈을 학교에 가져가 아들이 망신당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되었고, 결국 자신이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윤상이는 만들기 숙제는 으레 어머니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윤상이와 같은 반인 슬기네 어머니는 잡지사 기자다. 슬기 어머니 김숙현씨는 딸 슬기가 직접 만든 동물 탈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슬기가 주장하는 고양이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슬기에게 “아이구, 잘 만들었네”라고 말하며 동물 탈을 건네주었습니다. 슬기는 “아니야, 이건 고양이가 아냐”하며 화를 냈다. 슬기는 자기가 만등 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숙현씨는 “그러면 어때? 잘만 그렸는데 그냥 가지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슬기의 미덥지 않아 하던 표정은 차츰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슬기는 어머니에게 흔쾌히 “알았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탈을 학교에 가져간 슬기는 교사로부터 “네 눈에는 그게 고양이 같니?
내가 보니까 쥐 같구만”이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교사는 슬기에게 고양이 탈을 다시 만들라고 했습니다. 슬기는 밤늦게 퇴근한 어머니를 보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그것 봐.
내가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월간 잡지의 원고마감 기간이어서 회사에서 파김치가 되도록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김숙현씨는 슬기의 말을 듣자 교사에게 왈칵 화가 났다. “아니, 애들이 그 정도 그렸으면 됐지. 어쩌라고.
참 나”하며 슬기 앞에서 교사를 비난했습니다. 그후부터 슬기는 학교숙제를 혼자서 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툭하면 어머니를 흉내내어 담임교사를 못마땅해하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요즘 초등학교에는 열린교육이 확대되면서 암기 교욱에 치중하던 옛날과는 달리 만들기, 말하기, 행동하기 등등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며 놀이하듯 즐기는 교육을 권장합니다. 그런데 취지는 훌륭하지만 가끔 아이들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과제물이 나올 때가 있고, 부모는 남의 아이에게 기죽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숙제를 대신 떠맡는다. 그러다 보니 만들기나 그리기 숙제는 어머니들의 차지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일이 많고 귀찮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는 교사대로 아이들이 만들면 서툰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다시 규격에 맞추어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은 곧 부모와 함께 만들라는 요구가 됩니다. 아이들은 점차 만들기를 외면하게 되고 스스로 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이들은 스폰지와 같다.
어른의 사소한 한마디가 아이의 가슴 깊이 스며들어 그 아이의 일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우리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그림도 잘 그려 우리가 살던 원주지역에서 활약하던 한화가에게 다섯 살 때부터 미술지도를 받았다.
미술을 지도해준 화가가 “하늘을 그려봐”라고 말하면 별이나 해, 달, 귀신을 그리는 다른 애들과 달리 비행기를 그려 자주 칭찬을 받곤 했습니다. 인상작용과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때 한 담임교사가 실물처럼 그림을 그리지 않는 우리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가 낸 그림을 보고는 “애걔, 그것도 그림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아이가 그림에 갖던 흥미를 일시에 사라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이제껏 칭찬받던 것과는 달리 담임선생이 실망하는 태도를 직선적으로 보이자 자신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아이는 그후부터 절대 그리기를 하려고 들지 않아 미술 숙제를 할 때마다 나와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작은아이는 “나는 그림을 못 그려”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그리기에 자신 없어 할 때마다 저는 그때 말 한마디로 아이의 흥미를 잃게 한 교사가 원망스러웠다. 어른들은 체면을 중요시하며 아이들도 어른처럼 사실적으로 그리거나 만들어야만 그게 정말 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그렇게 할 수 없기도 하고, 또 아이들의 퐁부한 상상력이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진정한 열린교육이 가능해질 텐데, 그걸 모르는 교사나 부모가 많습니다. 또 무신경한 말 몇 마디로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애걔, 그게 뭐야?”라는 말 한마디가 자녀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선배, 저는 치마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워. 저는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거든.” 얼굴이 갸름하고 유난히 흰 진영이가 말했습니다. 진영이는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코스모스 같은 해맑은 소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왜? 너 날씬하잖아. 난 네가 치마를 싫어해서 바지만 입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냐.
다리가 무다리여서 내놓기 창피해.” “얼마나 심하길래?” “하여튼 치마는 절대 입을 수 없어.” 진영이는 화사한 봄 주말에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거리를 누비는 여성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해에는 유난히 하늘하늘한 천으로 만든 샤넬 라인의 치마가 유행이었습니다. 그러던 진영이가 출퇴근을 고려해 신당동에서 나와 같은 여의도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중 목욕탕에서 진영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영이가 ‘무다리여서 절대 치마를 입을 수 없다’고 말한게 생각나 나도 모르게 진영이 다리부터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영이 다리는 내 다리보다 더 곧고 날씬했습니다. 오히려 무릎에서부터 약간 휜다리를 하고도 줄기차게 치마를 입고 다니는 나를 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뭇 분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리가 어때서 그래?
이쁘기만 한데.” “어머 아니에요, 내 다리가 무다리라니까요.” 진영이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습니다. 저는 나중에 진영이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에야 진영이가 돼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진영이 어머니는 알려진 미인에다 멋쟁이였다.
진영이에게는 언니와 여동생, 이렇게 해서 세 자매가 나란히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언니와 여동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머니를 많이 닮았는데 진영이만 아버지를 닮아 다른 자매들과 다르게 생겼단다. 진영이 어머니는 그러한 진영이의 외모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진영이가 어려서부터 꽃무늬에 레이스가 많이 달린 여성스러운 옷이라도 입으려고 하면 “아이구, 여자애가 다리가 그게 뭐야. 그 다리를 해 가지고 어떻게 치마를 입어”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멋쟁이 어머니와 대비가 되니 자기가 봐도 다리가 무다리처럼 느껴질 만했습니다.
그후부터 진영이는 치마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신체에 대해 갖는 편견은 자녀들에게 평생 신체에 대한 열등의식을 안고 살아가게 만든다. 또한 자녀들이 열심히 한 일에 대해 “아니, 그게 뭐야”라고 말하면 자녀로 하여금 앞으로 더 이상 그 일을 계속하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아이들이 그리거나 만들기 숙제를 했을 때 결과가 어른의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함부로 “아니, 그게 뭐야?”라고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의 숨겨진 재능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열린교육을 하려면 아이들이 서툴더라도 기다려주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동물 탈을 지접 만들어 가면놀이를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집접 참여하는 즐거움,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호기심 발동 등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그저 탈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는가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