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때는 기원전 약 1천년경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의 시대였다. 수차례 수세에 몰리던 블레셋은 전열을 가다듬어 총공격을 감행해왔다. 사울왕은 전쟁을 치르기에 이젠 너무 늙었고, 정신병에 가까운 광기로 인해 지도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 광기의 타겟이었던 다윗의 세력을 추적하기에 급급해서 정세판단에 대한 안목조차 이미 상실한 상태였다. 끊임없는 외세와 내분으로 장군들과 병사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져 있었고, 이권에만 눈이 어두워져 있었기에 하나님의 도움이나 요행이 아니고는 블레셋과의 대전에서 이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의 나팔수가 뿔나팔을 불어 적이 공격해오고 있음을 알렸다. 왕과 장군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처들어오는 적병의 규모와 근접해 온 거리를 분석하면 달리 어떤 대책이나 전략을 세울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곧이어 블레셋 군사 중에 용감한 자들이 경계를 넘어 들어와 이스라엘 병사를 쓰러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화살수들이 울타리를 넘는 적병을 몇차례 명중시켜 저지했지만, 끊임없이 쳐들어오는 적들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제 블레셋 병사들은 화살도 필요없는 근거리에까지 밀려 왔고, 곳곳에서 칼싸움이 벌어졌다. 사울왕의 눈빛은 점점 먹구름으로 덮혔다. 각개전투에서 승리하는 쪽은 벌써 블레셋이고, 일어서는 이스라엘 병사는 블레셋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뿌우-."

퇴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고, 사울왕과 지휘부는 이미 퇴각하여 길보아산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블레셋 용사들이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었습니다. 블레셋군은 이스라엘이 산악전에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부가 길보아산에 도착하기 전에 결단을 내야겠다는 생각과, 사울왕을 쳐서 공을 세워보겠다는 야심으로 사나운 들짐승처럼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도주하는 왕의 일행을 향해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왕의 일행은 날아오는 화살의 수를 보아 대강 몇 명의 적병이 추격해오는지 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계산해 보았다. 왕을 호위하던 호위병들이 화살에 맞아 서너명 그 자리에 쓰러졌다. 조금전까지 그들의 뒷꿈치로부터 약 3미터 뒤에 땅에 꽂히던 화살이, 이제는 머리 위를 지나갈 정도로 가까워졌다. 다윗의 절친한 친구이면서 사울왕의 아들인 요나단이 아비나답과 발기수아와 함께 블레셋 병사들을 향해 달렸다. 왕이 달아날 시간을 벌기 위해서 전사를 각오한 것입니다.

블레셋의 용사가 던진 창이 요나단의 바로 앞까지 날아와 꽂혔다.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의 요나단과 병사들이 칼을 불끈 쥐고 함성을 지르며 적병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칼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최후를 각오하고 발악하는 이스라엘의 왕자와 호위병의 시체를 짓밟으며 그들의 추격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결사대의 항전은 왕의 일행이 길보아산까지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긴 하였으나 산 중턱에도 못미쳐 다시 적의 공격을 받았다.

블레셋 군사들이 일제히 화살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누가 쏘았는지도 모르는 화살들 중에 하나가 사울왕의 복부에 명중했습니다. 처음에 사울 왕은 화살에 맞은 것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육신 속에 조직을 파괴하는 커다란 이물질의 존재를 의식으로 더듬어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명적이었습니다. 사울은 이제 자신의 운명이 다한 것을 알았다. 그때 사울의 머리 속에 떠오른 얼굴은 아들 요나단도 아니고 또 숙적 다윗도 아니었습니다. 그 얼굴은 바로 사무엘 선지자였다.

사울이 선지자 사무엘을 처음 만났던 것은 우습게도 잃어버린 나귀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울은 평범한 시골청년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준수한 용모와 훤출한 키로 인해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금방 눈에 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무엘의 마음에 든 것은 청년 사울의 겸손함이었습니다.

점점 흐릿해지는 그의 의식 속으로 대관식 때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이기도 한 사무엘은 12지파 족장들과 백성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약400년간 사사의 시대를 지내왔소. 다른 나라처럼 왕권제도를 두지 않는 것은, 이 나라의 지도자는 오직 야훼 하나님이라는 민족의 신앙고백에 기초한 것이오. 왕을 세우자는 백성들의 요구는 하나님의 통치에 반역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는 자기의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는 까닭에 여러분에게 왕을 허락하셨소. 이제 여러분이 운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왕은 여러분에게 곡식을 거두어 갈 것이며, 군마를 위해 여러분의 마굿간에서 말을 데려갈 것이요. 백성들이여! 이 땅의 평화는 왕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백성들은 외침으로부터 특히 블레셋으로부터 스스로의 재산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왕정을 실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가장 연약한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나오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이름도 없는 가문의 사울은 수줍어서 숨어버렸다. 그 일은 사울이나 백성들의 기억 속에 오래 간직되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머리에 기름부음 받고 결심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아무도 얕보지 못하는 위대한 국가로 건설하리라.'

사실 그러한 사울의 야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국가조직을 정비하고 주변국과 분쟁을 치를 때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내세워 사사건건 왕정에 개입했습니다.

사울왕은 블레셋 용사들의 공격이 더 가열차게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복부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려 옷이 흥건히 젖었고 그 불쾌한 느낌은 통증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사울왕은 자기를 따르던 몇 명의 장군들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접전으로 인한 소음만이 귀에 쟁쟁거릴 뿐이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시 과거의 기억으로 되돌아갔다. 시작도 매듭도 분명치 않은 단편적인 기억들이 그의 혼미한 의식 속에서 파도처럼 다가왔다가 조개껍질처럼 기억의 물결에서 건져지는 몇가지 잔상이 떠올랐다. 사울왕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사무엘, 당신은 지금 어디 있소….'

사울왕이 집권한 뒤 꽤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아말렉 족속을 공격하였는데, 그때도 사무엘은 남녀노소는 무론하고 가축까지 포함하여 생명있는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보내왔다. 사울은 사무엘의 신탁을 이행하지 않았다. 사울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정치적인 간섭이었습니다. 그는 장군들과 참모들이 있는 자리에서 끝내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도대체 이스라엘왕이 누구요? 그 영감은 아직도 과거의 추억에 매달려 영적인 지도력과 정치적인 지도력을 분간하지 못하는 거요. 전쟁이란 곧 정치요 경제적인 수단인데, 노략물 없이 모든 것을 진멸한다면 도대체 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장군들은 왕의 명령을 따랐고 전쟁은 대승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의 출현으로 모든 것이 나빠졌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왜 따르지 않았는지 사울에게 책임을 추궁하였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은 백번 지당하며 이스라엘의 금언으로 전해진 또 하나의 유명한 명언이었지만, 사울은 모멸감으로 치를 떨었습니다. 결국 그 말은 자신이 사무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순종하란 말인가?'

하지만 사울은 아직도 백성들 사이에 요지부동한 사무엘 선지자의 영향력 때문에 함부로 그를 힐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를 기점으로 하여 사무엘과 사울은 사실상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확신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을 가장 힘없는 베냐민 지파에서 뽑은 이유는 사무엘 자신이 배후조종을 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사울왕은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왕권을 쥐고나서부터, 아니 사무엘과 결별하고 난 뒤부터 줄곧 그의 뒤를 따라다니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종교와 정치의 이원화된 지도력 때문일까? 사무엘 선지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사실 사무엘 선지자가 두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있던 산당의 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 사무엘 선지자 때문은 아니었지만 불운을 몰고오는 사자처럼 사무엘이 자기에게도 그 비슷한 운명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고 사울은 생각했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가 죽음의 사자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악몽을 자주 꾸었습니다. 그의 말기에는 꿈과 현실을 혼동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이 정작 두려워했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사무엘의 예언처럼 신의 영광이 그를 떠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왕의 직위에 있다 한들 그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사울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그 두려움 때문에 사무엘 대신에 신접한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의 홀(왕이 쥐고 있는 막대봉)은 이미 사울을 떠나 다윗에게로 옮겨졌고 사울은 그런 일들이 자기를 괴롭히려는 사무엘의 간교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때 그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다윗의 머리에 사무엘이 기름을 부었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부터 다윗은 사울의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평생 사울왕의 뒤를 쫓던 두려움이 길보아산까지 온 것입니다.

비참한 죽음보다 더욱 치욕스러운 것은 할례받지 못한 자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모욕이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자존심이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백성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긍심이었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