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옛사람들은 인간이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죽으면 명부 또는 저승이라고 하는 곳으로 저승사자가 데려간다는 사실을 의심한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승에서 떠난 뒤 돈이 되면 저승에서 휴가를 얻어서 그리운 가족들 곁으로 잠시 다니러 온다는 사실도 또한 믿어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조상 제사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되면 제탓, 못되면 조상탓'이라는 우리나라 속담도 알고 보면 죽은 조상의 영혼이 살아 있는 가족들에게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민간신앙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살아있는 부모 이상으로 이미 세상을 등진 조상들을 모시기를 극진히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아직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승에 집착한 나머지 죽은 뒤에 가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은 고해라고 하셨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승 자체가 바로 극락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인지 어떤 수단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 세상에서 잘 살면 그만이지 죽은 뒤의 세계가 어디 있느냐 하는 심히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것만을 믿게 마련이고, 따라서 영혼 같은 것은 아예 존재 여부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유계나 영계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들을 오히려 어리석은 인간들이라고 비웃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바로 인생의 낙오자인양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관심을 가질 시간이 있거든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어 이 세상에서 잘 살 생각을 하라'고 훈계까지 하려고 든다. 권력 있는 자리에 앉아 있고, 수중에 돈도 많고 보니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몹시 교만하게 마련이고, 자신의 욕망대로 사는 인간들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남을 짓밟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활방식은 강자의 생활태도라고 자부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만은 영원히 권세와 젊음을 누리고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계집질도 하고 술도 과음하고, 많은 여자들을 정복한 것을 마치 무슨 큰 업적이라도 된 것처럼 자랑으로 여긴다.

이런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쓰러진다 부랴부랴 종합병원에 입원해서 종합진단을 받는다. 위암, 또는 간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주위에서는 본인에게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가진 애들을 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술로 성공을 거두는 수도 있지만, 결국 몇 년 안에 재발해서 죽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입니다. 또 수술을 하다가 병세가 너무 악화되어 집도를 하지 못하고 다시 봉합수술을 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환자에게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거짓말을 하게 마련입니다. 얼마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를 해보지만 병세는 점점 더 악화해 가기만 합니다.

그러자, 어느날 병원에서는 퇴원명령이 내려진다. 이렇게 되면 길어보았자 한달 안에 환자는 저승으로 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환자는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 좋은 집과 예쁜 아내와 그 많은 돈들을 남겨놓은 채 죽는게 억울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가족들을 들들 볶고 왜 병원에서는 수술이 성공했다는데 하나도 몸이 좋아지지 않느냐면서 짜증을 부린다.

먹지도 못하고 배설도 되지 않고 잠도 오지 않습니다. 배에는 복수가 차서 흡사 오뉴월의 맹꽁이 모양으로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린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지금은 걸인보다도 못한 신세입니다.

건강했을 때, 교만방자하게 처세한 벌이 이런 형태로 자기를 찾아왔다는 것을 그는 아직도 깨닫지 못합니다. 다 죽어가면서도 은행통장과 도장은 벼개 밑에 넣어두고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합니다.

식구들이 자기 하나 살려내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누구를 원망할 기력조차도 없어진다.

여기서 교양이 조금 있는 사람은 늦게나마 반성을 하여 죽은 뒤의 일에 대해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끝까지 반성도 하지 않고 깨닫지도 못하게 마련입니다.

이제는 곁에서 시중드는 가족들을 의식적으로 들볶는 것만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환자의 증상이 오래 지속되면 주위의 가족들도 기진맥진하게 됩니다. 어차피 살지 못할 바에야 어서 돌아가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유산 분배에 대해서 환자 모르게 수군덕거린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가족들로부터도 완전히 고립된 존재가 됩니다.

그래도 환자는 삶에 대한 집착에 몸부림칠 뿐, 죽은 뒤에 찾아갈 저승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 날 동안 혼수상태가 계속되다가 환자는 드디어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의식불명이었기에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채 저승사자에 의하여 유계로 운반됩니다.

그는 저승에 가서도 계속 잠만 자고 있습니다. 저승에서 다시 이승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지면 그의 기절한 영혼은 선택된 어머니의 모태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진화가 덜 된 영혼의 경우입니다.

그는 다시 태어나지만 여전히 무신론자로서 잘못된 생활 습관을 갖게 된다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큰 소리를 친다. 이것은 그로서는 당연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관적으로 보아서 저승에 가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조금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임종의 자리에서 정신이 들락날락하다가 숨이 넘어간다. 평소에 지극히 사랑하던 외아들에게 나를 살려달라고 마음속으로 아우성을 친다.

한편, 아들도 아버지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쓴다. 이 순간 부자는 영파에 있어서 진동 사이클이 같아진다. 임종하는 순간, 아버지의 영혼은 저승으로 가지 않고 아들의 몸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이런 경우, 죽은 사람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의 몸에 빙의되었다는 사실마저 모르게 마련입니다. 임종 직전에 갖고 있던 느낌이 영속될 따름입니다. 희미한 의식속에서도 간암 또는 위암을 앓고 있다는 생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태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세월이 지나면 아들에게도 아버지와 똑같은 병 증상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유체에서 내어뿜는 독가스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아들은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 죽은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자기 자신이 마치 곧 죽을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히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결국 아버지와 똑같은 병으로 죽게 됩니다.

빙의령으로 고통받는 환자는 우선 진동수를 한달 내지 둬달 복용시켜서 몸안에 축적된 유독 가스를 배출시켜 주고, 며칠동안 체질개선 시술을 한뒤 제령을 하면, 대개 기적적으로 회복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한번 빙의되었던 사람은 유체가 달라져 있으므로 또 다른 빙의령에게 빙의되기 쉬운 체질로 변화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은반지에 특수한 조각과 진언을 새기고 진동을 넣어 왼쪽 약지에 끼워주면 빙의 현상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을 계발하여 현재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 보다 조금 나은 무신론자의 경우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임종의 순간에 누운 환자는 그 심경이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평소에 소신껏 살아왔기에 별로 후회할 것도 없습니다. 죽으면 깊은 잠에 드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숨을 거두는 순간, 눈 앞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진다. 인제는 끝이로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 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다시 맑은 정신이 돌아옴을 느낀다. 정신을 차려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위의 모든 정경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아내가 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친다.

"여보, 나 죽지 않았오. 이렇게 살아났지 않소. "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아내는 여전히 울고만 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전까지 자기가 누워 있던 자리에는 창백하게 모습이 변한 또 하나의 자기가 누워 있는게 아닌가!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로 알았던 환자로저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크게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본전은 없어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는 어슬렁어슬렁 집 밖으로 나간다.

그 누구에게도 자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완전히 이 세상에서 소외되었다는 서글픈 느낌마저 든다.

길거리의 모든 것들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살아 있을 때는 아주 심한 근시여서 잠시도 안경이 없이는 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문득 가까운 친구A가 생각이 난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가 보고 싶어진다. 다음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A의 방안에 와 있지를 않은가!

파자마 바람으로 앉아 있는 A를 본 순간 그는 반가운 나머지,"여보게 날쎄. 나야. "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A에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게 분명했습니다. 앗차 저는 죽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자 전화가 울린다.

A는 수화기를 집어든다.

"네, 그렇게 되었군요. 발인은 모레 아침 열시라구요. 네, 꼭 가뵙겠습니다."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자기 집에서 걸려 온 전화인게 분명 했습니다.

(오래 병으로 고생하더니 어차피 회춘하지 못할 바에야 잘 죽었지. 차차 쓸쓸해지는군,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없어져 가니!) A가 하고 있는 생각을 아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정말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그는 미국에 있는 큰 아들 내외가 궁금해진다. 사진을 보내온 것을 눈앞에 그려보고 아들의 주소를 생각한 순간, 그는 어느덧 자기의 유체가 아들네 집에 와 있음을 안다.

마침 아들과 며느리는 말다툼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이 오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 가야겠다는 아들과 소식 오기 전에 떠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며느리의 의견이 서로 대립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역시 아들은 효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대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고향 집에서 비통에 잠겨 있을 가족들이 궁금해지는 순간, 그는 어느덧 자기가 임종한 방안에 와 있음을 안다.

그는 그 뒤부터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 인간은 죽으면 아주 없어지는게 아닐 뿐더러 어느 의미에서는 더 자유스러운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쪽에서 관찰할 수 있을 뿐, 이 세상의 물건 중에서 종이 하나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죽어서 가는 저승이란 없구나!

결국, 이승과 저승은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되 차원이 다른 것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던 어느날, 그는 길거리를 산책하다가 오래 전에 헤어진 옛 친구를 만난다.

"자네 웬일인가? 정말 오랫만일세 그려. "

하고 반색을 하는 바람에 그는 친구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기를 알아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주 손을 잡고 생각해 보니. 그도 역시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인게 분명했습니다.

그는 이 친구 덕분에 살아있는 사람 몸에 빙의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빙의당한 사람은 모르는 가운데, 다시 자기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는 육체의 소유자가 되어 본다는 것, 이것은 정말 희한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빙의한 사람의 건강이 나빠진 이유는 알지를 못합니다.

이런 망령이 빙의한 사람의 경우, 필자의 앞에서 영사를 받으면 이런 항의를 해오게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육신을 잃어버린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존재한다는 것은 엄숙한 사실이지만 저승은 없습니다. 저한테 지금 어디로 가라는 것입니까? 저는 못 갑니다. "

"저승은 있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영혼의 세계에 대해서 너무나 몰랐고, 또 이승에 대해서 너무 애착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빙의령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죽은 뒤, 보호령의 안내를 받아 반드시 유계로 가야만 합니다.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 저승사자가 보호령과 함께 당신 앞에 나타나게 마련인데 당신은 그전에 빙의가 된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심은대로 거둔다'는 절대적인 인과율이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우주의 법칙을 지키지 않고 남의 몸에 기생충과 같이 빙의해서 그 사람의 생명에너지를 도적질하면서 살게 되어 그 사람에게 천명을 다하지 못하게 할 때 그 죄는 큽니다. 결국 언젠가는 이런 행위가 결과가 되어 당신은 버러지의 알 속에 갇히는 몸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무간지옥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인간으로 재생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 입니다. 저승에 가야만 당신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가 있 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다고요? 저는 다시 태어나는 것을 원치않습니다. 이대로가 좋습니다. "

"그렇게는 안됩니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해서 남의 생명을 좀 먹고 그 결과 버러지의 알 속에 갇혀서 앞으로 몇천년, 아니 몇만년 동안 인간이었다는 의식을 지닌채 버러지로서의 생활을 계속하겠습니까?"

여기에는 아무리 아집이 센 망령도 잠잠해진다. 결국은 필자가 부른 보호령의 안내를 받아서 저승으로 가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입니다.

죽은 사람들의 많은 영혼들이 저승으로 가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빙의된다는 사실은 매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몸 안에 축적되는 각종 공해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병들어 가고 있는데 망령까지 빙의되어 '생명 에너지'를 뺏어가고 유독 가스를 내어뿜으니, 빙의된 사람이 난치병, 불치병에 걸리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저승으로 가지 않는 영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재생하는 인간의 수효는 줄게 되고, 공해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늘게 마련인데 이대로 아무런 대책없이 방치하면, 앞으로 10년 내지 20년 후에는 세계인구는 갑작스레 줄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생식력을 상실하고, 한편 난치병과 불치병이 유행성 감기처럼 퍼질 때, 인간의 종말은 가까워 온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간은 이땅 위에서 한번은 낙원을 이룩해야 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이 현상세계에 살면서 지옥을 연출한 인간들이 어찌 영혼으로나마 구제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입니다. 또한 죽는 것이 끝이 아님도 사실일진데, 죽은 후를 대비해 살았을 때,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고, 또 우주의 법칙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아 옳게 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육체를 버린 영혼들이 저승으로 가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몸에 빙의되는 사실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은 바로 인류 의 종말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하여 죽어서 빙의령이 되지 않도록 깨달아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