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아니, 왜요?” “저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셔서........” “어머니는 다 그렇지요.” “지금 80세가 다 되셨는데도 아직도 아침마다 전화해서 저한테 ‘차 조심해라’‘정직하게 살아라’‘밥 잘 챙겨 먹어라’라고 말씀하시지요.” “선생님은 참 행복하시겠어요.” “지금도 어머니와 통화가 안 되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환갑을 몇 년 남겨두지 않은 다국적기업 사장 한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눈물겨웠다. 그는 미국의 동부지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꼽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의 잘 나가는 기업의 전문 경영인으로 뽑혔다.
그런데 그는 사장으로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회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몹시 아쉬워했습니다. 당시 그의 결혼 생활도 불행했습니다.
세 번 이혼하고 그때에는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 없이 직업까지 잃은 그를 사람들은 동정했습니다. 저는 그가 어머니에 관한 말을 했을 때 돼 그처럼 직장이나 결혼 생활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걸림돌은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그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연세가 80세라면 누구나 노쇠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노쇠했다는 사실마저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효심은 눈물겨웠지만 나에게는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그와 결혼한 여성들은 그 남자의 아내 자리를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아내들은 마치 자신이 숨겨진 애인 정도의 위치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결혼한 그의 아내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에게 여러 차례 둘어본 이야기를 한꺼번에 요약해보면 그의 어머니는 젊어서 혼자가 되셨다. 그에게는 달랑 형 한 사람만이 있었는에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두 형제를 훌륭하게 기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노력에 힘입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학교에 합격했고 대학 때 정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까지 갈 수가 있었습니다. 형은 어머니의 꿈을 이루어주지 못해 어머니의 관심영역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형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일가를 이루었고, 동생이 미국으로 간 후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와서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것 같아 늘 죄스러웠다. 게다가 형네 집에서 함께 살지 않고 혼자 사는 어머니가 늘 안쓰러워 그의 가슴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국제 전화로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너만 믿는다. 너는 내 인생의 전부야”라고 말해왔다고 합니다. 그는 모르긴 해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재혼은 못 할 것 같았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반대하자는 말은 아니다.
자녀가 자라면 어머니는 그저 그림자로 물러서야 하며, 아들의 날개를 움켜쥐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에게도 어머니의 인생이 있어야만 합니다.
자녀에게만 의지하고 인생을 비치면 성년이 된 자녀와 거리를 두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홀어머니의 외아들과 결혼한 교민 여성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미치겠어요.
망령난 우리 시어머니께서 아들만 보면 자꾸 옷을 다 벗어버리세요. 망측하기도 하고 참을 수가 없어요.”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과부가 된 시어머니는 오로지 그 아들 하나만 의지하면서 일생을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딸들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대신 아들은 공부를 잘했고 의사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아들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미국 이민을 한 후 소식이 없자 어머니는 망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그러한 어머니가 안쓰러워 어머니를 미국으로 오시도록 했는데 며느리는 시어먼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아까운 인재들이 성년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푼안을 떠나지 못 해 중년 이후 능력을 사장시키는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보았다. 현명하고 강인한 어머니라고 해도 자녀를 어머니의 틀에 끼워 맞추면 자녀가 크게 자라기 어려운 것입니다. 어릴 적의 자녀는 보호할 수 있지만 다 자란 자녀에게는 어머니의 보호가 오히려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를 일찍 놓아주는 어머니가 자녀를 정말로 성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지나치게 자녀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합니다. 그 때문에 ‘만약 자녀가 나를 배신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어떤 어머니는 수시로 “넌는 나의 전부야”“나한테는 너밖에 없다”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생을 송두리째 자녀에게만 걸면 성인이 된 자녀에게 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자신을 몽땅 희생하지 않는 부모의 자녀들은 독립심이 강하고 부모에 대한 부담없이 잘 지낸다. “너 이 다음에 엄마랑 한 집에서 살래?” “그럼요. 엄마하고 살지 누구랑 살겠어요?” “아이구. 지금이야 그렇게 말하겠지만 이 다음에 색시나 얻어 보라지.
엄마가 따라올까봐 걱정하겠지?” “엄마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는 평생 엄마랑 살 거야.” 우성이는 숨까지 식식애며 대답했습니다. 전업 주부인 민혜숙씨는 초등학교에 이제 막 입학한 아들이 집으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기만 하면 아들을 붙들고 이와 같은 다짐을 했습니다. 물론 아들은 한결같이 어머니랑 같이 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민혜숙씨는 아들이 무슨 대답을 할지 뻔히 알면서도 아들의 입을 통해 ‘엄마하고 같이 살 거다’라는 말을 확인 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그것은 아마 지금 자신의 어머니가 처한 상황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의 팔순 친정어머니는 지금 이른바 ‘집시 노인’이 되었습니다. 셋이나 되는 오빠들이 서로 어머니를 모시지 않으려고 해 돌아가면서 1년씩 오빠들 집을 전전하기 때문입니다. 민혜숙씨는 맏며느리여서 친정어머니를 모실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 자주 한숨을 내쉰다. 가끔은 남편을 향해 “딸 자식은 자식이 아닌가, 뭐?”하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맏며느리지만 시부모를 모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부모도 모시지 않는 맏며느리가 친정어머니를 모셔올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민혜숙씨가 친정어머니 이야기만 꺼내면 갑자기 입을 조개처럼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도 자기 나름대로 장남으로서 부모를 모시지 않고 따로 사는 일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아이에게 쏟아진다. 우성이는 어머니가 “이 다음에 누구하고 살 거지? 나한테는 우성이 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듣기 싫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어머니를 모시고 살 텐데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어머니가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성이는 어머니의 그 말에 벌써부터 큰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모 자녀 간은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일 때 서로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자녀가 성인이 된 후 부모때문에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너밖에 없다’라고 강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는 자신의 노후를 위해 존재하는 부속물도, 위안거리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