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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우리 엄마가 그런 것은 불량식품이니까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어.” “너네 엄마가 뭔데 그런 말을 해? 너네 엄마가 무슨 박사라도 되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남자아이들이 학교 앞 길거리의 ‘뽑기장사’앞에서 옥신각신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크고 덩치가 큰 남자아이가 유난히 얼굴이 희고 가냘퍼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뽑기를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얼굴 흰 아이는 뽑기가 불량식품이어서 자기는 할 수 없다고 버텼다. 덩치 큰 아이는 그 아이와 반드시 뽑기를 해야 한다는 듯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얼굴 흰 아이는 엄마가 말한 불량식품을 사 먹을 수 없음을 강조했고 덩치 큰 아이는 그 아이의 엄마가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덩치 큰 아이도 뽑기에 쓰이는 설탕물이 비위생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덩치 큰 아이가 얼굴 흰 아이의 엄마가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뽑기가 불량식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남을 석득하려면 권위 있는 사람의 말과 명확한 근거를 대야만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1994년 처음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바로 그 덩치 큰 아이가 친구에게 말하듯 명확한 근거를 대서 말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명확한 근거를 대서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미국 학생들과 그것을 실펀하기 어려운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일은 몹시 힘들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인생경험도 많았지만 말을할 때 그 학생들처럼 유명한 학자나 명인들이 한 말을 근거로 자기 주장을 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말할 때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든가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등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워 말해왔기 때문에 미국 학생들처럼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실의 제임스 윌리스 교수가 말하기를 ‘사람은 말하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따라서 말하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미국 학생들은 입만 열면 반드시 권위적인 연구결과 등 근거를 확실히 덧붙여 자기 주장을 폈지만 저는 그것이 잘 안 됐다. 아나운서를 20년이나 한 나였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미국에 와서 ‘스타일 구기는’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영여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통용되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말하는 것보다 감정을 내세워 큰 목소리로 우기면 더 잘 통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바뀌면서 그것이 차츰 퇴색해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 학교로 옮겨가 숙제하는 것을 보니 미국 학생들이 근거를 대며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잘 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간 우리 아이들이 받아 돈 숙제는 대부분 하나의 주제에 대해 관련 도서를 4권 읽고 저자의 생각 12개를 인용해 글을 써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숙제를 할 때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글을 써서 내야 하는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읽어야 할 책이 4권에서 8권으로 늘었고 대학에 들어가자 그 양이 더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지고 문제집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를 풀어오라는 것이 초등학교 숙제의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조사하는 숙제가 몇몇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하루종일 문제집을 붙들고 있거나 책을 베끼는 숙제를 낸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원래부터 논리에 약한 것은 아니다.

선조들은 논어나 맹자 등을 인용해 정확한 근거하에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은 충분한 말하기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는 구태의연한 학교교육 때문에 우리는 원래부터 연설이나 논리적인 말하기에 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고 생각해서 학교에서도 교사가 발표를 시키면 매우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딸들을 한 사람의 당당한 성인으로 기르려면 우리가 본래부터 논리에 약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지금부터라도 경쟁력을 길러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 학교로 옮겨간 후 많은 미국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태인 친구들이 가장 많습니다. 유태인은 미국 상권의 80%를 쥐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를 유태인들이 거의 다 장악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유태인 친구들을 보면 할아버지 때부터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은 부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노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놀이가 바로 토론이었습니다. 우리 작은아이는 유태인 못지 않게 토론을 좋아해 그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뱌ㅁ새워 토론을 벌이기도 하는데 근거와 논리를 세워 말하는 수준이 놀랄 만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논리와 철학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웬만한 아이들에게는 논리에서 지지 않지만 유태인 친구들은 만만치 않다고 고백합니다. 유태인들은 자녀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논리와 철학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개인감정을 앞세워 말하지 않고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말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서를 많이 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유태인 자녀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어려운 철학서적도 읽게 한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다 모여 살고 있습니다. 그 중 유태인들이 가장 장사를 잘하고 그 다음이 아라비아 사람들, 중국 사람들, 인도 사람들 순으로 장사를 잘하는 순위를 꼽는다. 우리 아들 친구들 중에는 유태인과 중국인, 인도인이 다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어려서부터 철학서적을 많이 읽었으며 논쟁을 좋아하고 논쟁을 벌일 때에는 반드시 논리적으로 말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유태인 친구를 많이 사귄 이유는 유태인과 한국인에게는 비슷한 특징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모들의 자녀교육 열기와 자기 감정에 솔직한 것들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논리를 익히게 하면 유태인 못지 않은 비즈니스맨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유태인 친구들과 논쟁을 벌일 때는 마치 싸우는 것처럼 큰 소리를 지르면서 무섭게 언쟁을 벌인다. 처음에는 이 아이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가 싶어서 아이들 방을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이과 취향인 큰아이는 처음에는 톤론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고 옆에서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시로 나에게 와서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애들은 저러면서 노는 거예요”라며 상황설명을 해주어 나를 안심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이 아이들의 장점은 토론에서 지면 승자에게 깨끗하게 승복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생활태도가 결국 사회생활을 잘하게 하는 중요 요소로 작용하고 유태인들은 그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칸트와 데카르트 등이 저술한 철학책과 삼국지 손자병법 등을 대부분 다 읽었습니다. 그때문에 또래의 친구들과 대화수준이 잘 맞지 않아 하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노상 두들겨 맞고 왔다. 말하자면 ‘왕따’였다. 당시 주변사람들은 나에게 어린아이가 그런 것까지 읽도록 놔두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말렸다. 물론 내가 강제로 아이에게 그 책을 읽도록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사모았고 그 책들을 발길이 닿는 곳마다 늘어놓았습니다. 이 아이는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책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 책읽기가 일상화되었습니다. 그 덕에 우리 아이는 미국에서도 가장 논리적이라는 유태인 친구들과 토론을 해 이기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의 꿈은 유태인보다 더 유능한 장사꾼이 되는 것이고 저는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지식과 논리적인 말솜씨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논리적인 책을 가까이 하면 탄탄한 논리의 구성 방법을 익힐 수 있고 그 속에서 세상사는 이치를 쉽게 깨닫게 되어 장사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의 유태인 친구들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입니다. 장사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소비자 설득에 탁월하다는 뜻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길러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워 말하지 않고 반드시 근거를 가지고 말하도록 훈련을 시키면 자란 후 쉽게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옆집 아이가 그랬대”라고 막연하게 말하지 말고 “옆집 아이가 미끄러져서 유리창을 깨뜨렸어요”라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사실을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밝혀 말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도 대체로 추상적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경쟁력을 높입시다’와 같은 말이 그런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어떤 방법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하는지를 말해서 듣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다른 뜻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점에 너그러워서 ‘대충 넘어가지 뭐’ ‘좋은 것이 좋지 않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이 길 하나를 물어도 정확하게 댜답하지 못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신호등 몇 개를 지나서 왼쪽으로 꺾어서 다시 신호등 몇 개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꺾고’와 같이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못하고‘저쪽으로 가세요’라고 막연하게 알려주어 길을 찾으려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정확하게 대답해주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늘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건성으로 보아두어서 신호등을 두개 건넜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논리적 사고를 갖지 않으면 이처럼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부터 소홀해진다. 논리와 철학의 기초가 튼튼하면 길 하나를 보아도 어떤 골목으로 어느 정도 가서 구부러지고 신호등은 몇 개 건너야 하는지가 머리에 잘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사회생활의 체계를 쉽게 파악하며 아무리 복잡한 조직 안에서도 그것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근거 없이 그냥 추상적으로 얘기하도록 두면 이처럼 필요한 논리적 사고를 갖추지 못하게 됩니다. 자녀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길러주려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함께 본 다음 그 줄거리를 말하더라도 반드시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갖추어서 말하도록 하고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인용해서 객관적으로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이라든가 “내가”로 시작되는 주관적인 말하기를 논리적인 설명으로 바꾸어 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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